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휴관 안내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관람객 여러분들께 더 나은 관람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정비기간을 갖고자 합니다.
아래와 같이 잠정 휴관 하오니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휴관 기간 : 2023년 2월 1일(수) ~ 별도 공지 시 까지
문의 :  가천문화재단 032-833-4168

※재개관 시 홈페이지 공지

 

보증금 없는 병원

그 시절, 병원 문턱은 너무 높았다. 
미리 보증금을 내지 않으면 진료도 입원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돈이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하고, 
안타깝게 희생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든 병원에 와서 치료받고 수술하고 입원할 수 있어야 한다.
돈보다 목숨 아닌가?’ 
간판으로 써 붙인 ‘보증금 없는 병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

‘이길여 산부인과’는 아픈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자 했던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공익경영이 초석을 다진 곳입니다.
‘이길여 산부인과’가 있었던 자리 위에,
당시 모습을 생생히 재현해 둔 이 곳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작은 시골소녀의 꿈이, 의사 이길여의 열정이, 가천길재단의 비전이
시간을 초월해 한 길로 흐르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전시실 둘러보기

기념관 운영안내

  • 운영시간 :    09:00 ~ 17:00 / 현재 휴관 중

  •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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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on NEWS

중앙일보 Leader&Reader : '청춘 이길여' 1편 "내 이름이 뭐라고!" "이길여!" ··· 92세 총장, 그날 왜 말춤 췄나

지난해 5월 10일, 가천대 축제 무대 앞엔 수많은 학생이 모여 있었다. 초대가수 싸이의 등장에 앞서 92세(올해 기준) 이길여 총장이 무대에 올랐다. 학생들은 그의 이름 석자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소식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7편 92위 대학 200억에 산 이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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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라는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건 언제부터일까.


전국 단위 일간지 기준으로 보면 1998년부터 그의 이름이 나오는 기사 수가 갑자기 많아진다. 이전까지는 길병원 행사를 소개하는 단신 기사에 이름이 한두 번 나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1998년 가천의대를 설립하고, 경원대까지 인수하면서 언론은 이길여라는 이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는 이 총장에 대해 “교육계 진출 4년 만에 거물”이 됐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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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8일자 중앙일보 지면


의사였던 그가 대학 교육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나이는 66세. 당시 경원대는 이사장의 200억원대 등록금 횡령 등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 총장은 이 돈을 대신 보전해 주기로 하고 대학을 맡았다.


이후 경원대 등 4개 대학을 통합해 출범한 가천대는 대학가에서도 흔치 않은 혁신 사례로 꼽히며 변신을 거듭해 왔다. 이 총장은 2027년까지 국내 톱10 대학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왜 위기 대학을 거액을 들여 인수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20여 년 만에 완전히 다른 대학으로 탈바꿈시켰을까.


최하위권 대학을 20위권 대학으로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뒤 2000년 경원대 총장에 오른 이 총장은 재단 산하 4개 대학 통합 작업을 진행했다. 우선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전문대)을 통합했고,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통합했다. 그리고 2012년 가천의대와 경원대를 통합해 가천대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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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산하 4개 대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2012년 통합 가천대 출범식에서 교기를 흔들고 있는 이길여 총장. 사진 가천대



이후 가천대는 공학 중심 대학으로 체질을 바꾸고 강의실과 교수를 확충하기 시작했다. 199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경원대는 111개 대학 중 9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그런데 2023년 평가에서 가천대는 27위를 기록했다.


물론 26년 사이 평가 대상 대학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순히 92위에서 27위로 올랐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평가 대상 대학 기준을 현재 기준으로 일치시키면, 1997년 43위에서 2023년 27위로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순위가 오른 건 여러 지표가 개선됐기 때문이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중도 포기율이다.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는 학생 비율을 뜻하는데, 지난해 가천대는 이 비율이 16번째로 낮았다. 오히려 ‘인 서울’ 상위권 대학 중에 중도 포기 학생이 가천대보다 더 많은 곳도 있다. 요즘처럼 대학을 다니다가도 재수를 하는 학생이 많은 시대에 중도 포기율이 낮다는 것은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을 만큼 학교에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 총장이 당시 경원대를 인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이 대학의 발전 가능성이 엿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서울 인근의 대학이라는 입지를 유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을 인수한 뒤부터 이 총장의 고민은 커졌다.


 “어려서부터 ‘똑같은 신체 조건인데 쟤는 1등을 하고 나는 못하란 법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내가 운명처럼 하위권 대학을 맡았으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잠도 못 자고 어떻게 해야 꼴찌를 안 할까 고민했어요. 죽기 전까지 10등 안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20년 후 '학생 감소' 예상…"통합이 살길이다"

당시 이 총장이 고민한 10대 사학의 조건, 첫 번째는 ‘규모’였다. 작은 대학은 살아남기 어려우니 학생 수가 많은 대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의대’다. 의대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은 발전 속도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통합이 급선무였다. 재단 산하 4개 대학을 합치면 의대를 보유한 충분히 큰 대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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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총장은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뒤 2000년 직접 총장에 취임한다. 사진 가천대




통합은 규모가 큰 1개 대학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4개 대학 전체 규모는 줄여야 하는 작업이다. 통합 시에 유사 학과를 없애고 정원도 줄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당시만 해도 대학이 먼저 전체 정원을 줄여 통합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드물었다. 학생에게 등록금 수입이 나오는데, 그걸 줄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총장은 미래의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를 들었다. 최미리 수석부총장은 “그때만 해도 학령인구란 말도 생경했는데 앞으로 20년 정도 지나면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학생 수만 많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시더라”며 “롱런하기 위해서는 통합하고 효율화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명분이 있는 결정이라 해도 국내 대학 역사에서 통합은 드문 일이다. 규모가 줄어드는 학과의 교수들부터 격렬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가천대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들은 학교 안에 텐트를 치고 이 총장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 총장은 “나는 학생들을 위해 온 거지, 교수들 위해 온 건 아니다”며 반대 교수들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다.


“내가 학교를 팔아 먹을까 봐 반대하는 교수가 많았어요. 그 사람들한테 말했죠. 나 40년 의사 해서 돈 많고, 자식 없어 돈 줄 사람도 없다고, 내 돈은 학교랑 병원에 다 줄 거라고요. 그다음엔 내가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지 진심을 보여주는 것뿐이었죠.”


이후 학교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수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당시 총장 반대 운동을 하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면서 총장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건네주기도 했다. 이 총장은 “그때 당신이 반대만 안 했어도 더 빨리 발전했을 거 아니냐고 농담하는 사이가 됐다”며 웃었다.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산 초음파 기계

통합 이후에도 가천대는 다른 대학에서는 하기 어려운 구조조정을 잇따라 진행했다. 대표적인 게 공대 확대다. 이 대학 공학계열 입학 정원은 2014년 1307명에서 2024년 2060명으로 10년 새 700명 넘게 늘었다. 지난해 정부의 첨단학과 정원 확대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2025년에는 공학계열 정원이 2230명으로 더 증가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공학계열 정원이 가장 큰 대학이 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많은 대학이 이공계를 확대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총 정원이 고정돼 있어 한 계열을 늘리려면 다른 곳의 정원을 줄여야 하는데, 학내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천대는 AI, 스마트시티, 차세대반도체, 배터리 등 공학계열 학과를 계속 신설하고 정원을 늘려왔다. 2022년엔 창업에 강한 대학을 만들겠다며 '코코네스쿨'이란 창업 대학이 생겼다. 재학생이 창업하면 학점을 인정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는 파격적 제도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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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 코코네스쿨 개소식. 사진 가천대




 다른 대학과 달리 가천대는 왜 구조조정이 빠를까. 총장의 독단적 리더십 때문은 아닐까. 이에 대해 윤원중 부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학 발전에 대한 계획은 총장에게 위임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가 높아서죠. 실제로 예전보다 대학이 계속 좋아지는 게 결과로 나오니까요. 독재와 독단이라면 구성원들이 싫어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일해 보면 총장에겐 사심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재산이 늘면 학교에 다 투자하는 걸 직접 보니까요.” 


사심 없는 투자의 대표적 케이스 중 하나가 인천 이길여 산부인과 시절, 다이아반지 대신 산 태아 초음파 기계다. 당시 이 총장은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는 4000만원짜리 초음파 기계를 살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모임에서 만난 친구가 4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초음파 기계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다이아 반지 사면 나만 좋지만, 초음파 기계를 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겠어요. 남들이 나한테 돈 많이 벌었다고 하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요. 난 여유만 있으면 환자나 학교에 썼는데.” 


눈앞의 이익보다는 훗날의 큰 그림

이 총장을 오래 지켜본 대학과 병원 관계자들은 그의 리더십에 대해 “신기할 만큼 미래를 보는 눈이 있다”고 말한다. 베팅한 사업마다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추진되자 곧바로 소프트웨어학과를 만들어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AI 붐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2020년 국내 최초 AI학과를 만들었고, AI인문대학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90대 나이에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꾸준한 학습이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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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가천대는 IT 사업이 한국의 주력 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국내 최초 소프트웨어대학을 설립했다. 사진 가천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많았다. 길병원이 한창 성장하던 90년대, 다른 병원들은 곳곳에 병원을 늘리고 있었다. 길병원 내에서도 서울에 병원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이 총장은 “병원만 늘린다고 될 게 아니라,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설립이 먼저”라며 고개를 저었다. 결국 병원 대신 1998년 가천의대가 설립됐다.


의대가 설립된 뒤 병원을 짓자는 얘기가 또 나왔지만, 이 총장은 이번엔 “연구소가 필요하다”며 2004년 뇌과학연구소를 열었다. 당시 국내 유일의 7T(테슬라)급 MRI 장비를 설치했다. 이후에도 이 총장은 병원을 늘리기보다는 암당뇨연구원(2008년), 제2뇌과학연구원(2018년) 등의 연구시설을 먼저 지었다. “앞으로 의료의 화두는 뇌, 그리고 암과 당뇨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김우경 길병원장은 당시에 대해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당시 병원 교수들은 돈도 안 되는 기초과학을 왜 우리가 하느냐, 국가에서나 할 일이라며 다 반대했죠. 그런데 지금은 뇌과학연구원에 전 세계 유일의 11.74T급 MRI가 설치됐고, 세계 최초로 고해상도 동물 뇌 이미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요. 처음으로 뇌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건데, 2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굉장하죠. 저도 의사고, 원장이지만 그런 정도의 미래는 생각하지 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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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총장은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2009년 과학기술훈장 1급인 창조장을 받았다. 뇌과학연구소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를 설립해 국가의 기초 과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진 가천대



매번 성공할 수는 없는 법. 이 총장에게 실패하고, 좌절하는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물었더니 “정글 속에 홀로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고 답했다. 피투성이가 돼 정글을 헤치고 결국 탈출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사흘 밤낮 고민해 답을 찾아내고 만다는 것이다. 매사 긍정적인 모습 뒤에는 이런 집요함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 고민하면 그냥 고민이지만,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는 사흘 밤낮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고민해 보면 길이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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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6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6편 '200분 대본 다 외우는 89세, 그런 이순재도 이길여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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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번외’ 편으로 길을 튼다. 이길여 총장의 주변인들을 만나던 중,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해서다. 주인공은 이 총장의 서울대 후배이자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강단에 서는 배우 이순재. 그 역시 89세로 현역 배우 중 최고령인데, 직접 만나 보니 이 총장에게서 느껴지는 청춘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배우는 끊임없는 도전”이라는 그의 말 속에선 ‘이길여-이순재의 평행이론’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만큼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1. 200분짜리 연극 소화하는 강철 체력…에너지 보충은 고기

이씨는 2021년에 이어 지난해 6월 연극 ‘리어왕: King Lear’ 무대에 올랐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두 딸의 아첨에 넘어가 미치광이 노인으로 전락하는 주인공의 극적인 변화를 연기한 것. 원작을 각색하지 않은 대본으로 3시간20분이나 되는 실연 16회를 혼자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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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가 연극 '리어왕'에서 모든 것을 잃고 실성한 왕을 연기했다. 사진 연우무대·에이티알


무대에서만큼의 카리스마는 아니었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힘 있고 단단했다. 두 시간이 넘어가는 대화에서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2013년 예능 ‘꽃보다할배’에서 쉬지 않고 걷는 ‘직진순재’의 남다른 체력이 여전해 보였다.


비결을 물었으나 이 총장처럼 답은 싱거웠다. 식사를 거르지 않으며 특별히 챙겨 먹는 음식도 없단다. 22년 9월부터 네 작품을 연달아 하다 보니 연극 이후 10㎏ 살이 빠져 고기를 자주 챙겨 먹고 있다는 게 꼽을 만한 특징이었다.


“지난해 욕실에서 넘어져 사흘 입원하면서 겸사겸사 건강 체크를 했어요. 이 나이 먹도록 병원 신세를 한 번도 진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잘됐다 싶더라고요.”



#2. 늦게 배웠지만 가장 즐기는 취미는 골프

이 총장처럼 즐기는 운동 역시 골프였다. 72년 처음 배웠는데 ‘중지 기간’이 있었던 것도 똑같았다. TBC 시절 골프연습장에서 누군가 “탤런트 나부랭이가 골프를 다 친다, 세월 좋아졌구나”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당시만 해도 배우를 ‘딴따라’로 낮춰 보던 시절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골프를 치면 배우가 돈 많이 번다는 오해가 생기겠구나 싶었죠. 당장 그만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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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골프 예능 프로그램 '그랜파(Grand Par)' 출연 모습. 박근형, 백일섭, 임하룡과 함께 했다. 사진 MBN


그러다 82년 쉰이 넘어 다시 클럽을 잡았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즐기는 편이다. 지난해 여름 더위가 가시지 않았던 인터뷰 당일에도 아침 일찍 연기자 후배들과 18홀을 돌고 왔다는 ‘수줍은’ 고백을 했다. “스코어는 예전만 못해 100대로 내려왔지만 타수에 연연하지 않아요. 그저 운동으로만 즐겨도 좋습니다.” 언제 어떤 스케줄이 생길지 모르는 업의 특성상 헬스처럼 규칙적이지 않더라도 한 번 나가 많이 걸을 수 있다는 이유를 보탰다.


이씨의 또 다른 체력의 비결은 단연 금주다. 배우 오래 하려면 술부터 끊으라는 말을 후배들에게도 자주 한다고 했다. 20년 넘게 연극계에 있던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데, 그 계기가 처음부터 건강 관리는 아니었다. “젊을 때 술만 마시면 가게에서 싸움이 벌어지더라고요, 배우니까 사람들이 알아보긴 하는데 무시하는 말이 많았거든. 걸핏하면 시비가 붙으니 그때 결심했어요. 술은 절대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3. 업의 본질과 원칙으로 산다

이씨를 배우로 이끈 건 영화 ‘햄릿’이었다. 서울대 철학과 2학년에 다니던 1955년, 서울 충무로 스칼라극장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 명대사를 듣는 순간 이건 예술이구나 소름이 쫙 끼쳤어요.”


당시 배우이자 연출가인 로런스 올리비에가 햄릿으로 나왔는데, 이후 빠져들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공동 작업을 할 정도로 작품을 재해석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는 점에서 롤모델로 삼았고, 서울대 연극부를 재건해 이끌고 실험극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었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더라도 누군가를 감동하게 할 수 있다면 괜찮다는 원칙만 생각했어요.”


‘의사는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켜 온 이 총장처럼 그도 ‘업의 본질’에 인생을 걸었다.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가 조연 단역만 할 때도 ‘우리는 연기를 하러 온 사람이니까’ 상관없었다고 했다. 78년 드라마에 출연하며 22년 만에 처음 출연료라는 걸 받으면서까지 배우의 삶을 버텼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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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돈을 덜 벌더라도 누군가 감동시킬 수 있다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해 왔다. 김현동 기자


“인생이라는 게 가끔 손해 보더라도 큰 손해는 아닙니다. 지금 나처럼 국민배우 소리 들으며 오래 배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손해’를 보더라도 ‘민폐’는 끼치지 않겠다는 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NG를 내지 않겠다는 것에 민감하다. 그래서 촬영 석 달 전부터 대본을 외운다. “사극 같은 대작은 온종일 내가 대사 하기만 기다리는 단역들이 있어요. 그들도 나처럼 배우 아닙니까. 내가 누가 될 수는 없죠. 대사 자꾸 까먹으면 배우 관둬야 해요.”


#4. 67년 경력에도 작품 공부는 필수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서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 (중략) 부자들아 가난한 땅이 고통을 몸소 겪어봐라. 그리하여 그들에게 넘치는 것들을 나눠주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


‘리어왕’ 출연을 이야기하던 그는 극 중 명대사를 숨도 쉬지 않고 읊었다. 작품을 공부하다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대사라 지금도 술술 나온다며, 그것이 고전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했다. “최고 권력자가 나락으로 가서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백성의 삶을 이해하는 스토리 속에 현대에 주는 메시지가 있어요. 리더십의 핵심이 여민동락이라는 건데 이건 지금도 유효한 게 아닌가, 배우가 작품을 한다는 건 이런 나름의 해석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그래서 촬영장에 갈 땐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품는다. 배우에게 작품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어서다. 1969년 김기영 감독과의 ‘미녀 홍낭자’ 촬영은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대감독과 의상을 두고 의견이 달랐지만 콘티를 예습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니 결국 그의 말을 들어줬다.


“젊은 배우들이 깡패 양아치 연기는 잘하는데 이상의 지적 표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지식인의 말과 상인의 말은 다르잖아요. 결국 인문학적 소양이나 언어 표현이 돼야 하는데, 이건 본인이 평생 연구할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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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tvN 예능 '꽃보다할배' 한 장면. 그는 가이드 없는 여행에 대비해 비행기 안에서 스페인을 공부했다. 방송 캡처.


이씨가 고수하는 암기력 체크 방법도 일종의 ‘공부’다. 20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 역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대통령 이름을 초대부터 외워 나간다. 익히 아는 인물 외 1년짜리 단기 대통령까지 빼놓지 않는데,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역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에서 이들의 판단과 결정을 연대기로 기억하며 자신을 점검한다.


#5 영원히 도전하는 게 건강 비결

이씨에게 연극 ‘리어왕’은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60년 배우생활에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맥베스’만 연기해 봤던 그가 방송에서 ‘리어왕을 해보고 싶다’라고 한 걸 본 제작사가 공연을 제안해 왔다.


그는 출연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에 나섰다. 축약이나 각색 없는 대본, 고전을 완벽히 재현한 의상과 무대장치, 무엇보다 더블 캐스팅 없이 혼자 책임지겠다는 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하지만 2021년 토월극장에서의 초연이 전 회차 매진되면서, 그는 ‘제대로만 하면 관객은 얼마든지 있다’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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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지난해 오랜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현했다. ‘안톤 체홉 작품 연출’이라는 꿈을 연기인생 66년 만에 이뤘다. 사진 아크컴퍼니·VAST엔터테인먼트


이씨는 배우로 살며 “평생이 도전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내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지난해 8월 촬영한 코미디 드라마 ‘개소리’의 역할 역시 67년간 거쳐 온 배역과는 또 달랐다. 국민배우에서 갑질 배우로 추락하며 지방에 내려온 이씨가 개소리를 알아듣게 되면서 사건 해결사로 활약하는 이야기다.


“내가 몰랐던 한 인물을 만나고 또 만들어가는 건 늘 어렵죠, 내 본래 기질과 다를 땐 더 그렇고요. 하지만 이게 또 내게 주어진 과제니까, 오늘 하루를 보내는 동력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건강하게 배우 할 수 있는 비결은 이게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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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9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5편 - 90 넘은 이길여 “너희들 125세까지 살 텐데 공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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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말에 총장님의 자서전 『길을 묻다』가 나온 직후 오랜만에 만났어요. 책도 그렇고 옛날이야기나 가볍게 할 줄 알았는데 웬걸요. 1시간 만나서 40분 넘게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라는 말이 오갔죠. 보통 그 연세면 추억을 곱씹거나 건강 이야기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총장님 입에서는 AI, 챗 GPT가 가장 많이 언급됐어요.”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이 총장을 두고 ‘젊다’고까지 표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력·주름·걸음걸이·성량 같은 외연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일수록 ‘새로움과 내일에 대한 호기심’이 진짜 건강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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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총장은 뉴스를 통해 새로운 화두를 포착하고 관련자들과 논의의 자리를 마련한다. 사진 가천대


실제 장수와 학습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는 이미 많은데, 그중에는 오래 사는 사람의 60%가 ‘새로운 학습에 도전했다’는 결과도 있다. 배우는 과정에서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새로 얻은 지식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고 안정감을 찾음으로써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하는 이 총장만의 자기 주도 학습은 어떤 것일까. 일상을 들여다봤다.


# 이 총장의 집은 작은 뉴스룸이나 다름없다. 거실의 큼지막한 테이블 위에는 늘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바퀴가 달린 이동 테이블 위에도 언제든 손 뻗으면 잡힐 수 있도록 신문을 둔다. 매일 아침, 중앙일간지부터 지방지까지 헤드라인이라도 빠르게 훑는 게 중요한 일상이다. 주요 일간지의 경우 사설을 읽는 걸 빼놓지 않는다.


집에 있는 동안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역시 뉴스다. 지상파 외에 종합편성 채널이 늘어나면서 “뉴스 하나가 끝나면 채널을 돌려 다른 뉴스를 보는” 시청 패턴이 굳어졌다는 게 주변인들의 전언. 이 총장이 ‘뉴스 마니아’를 자처하는 건 다양한 분야의 이슈에서 ‘메가 트렌드’를 파악하고 업무에 적용하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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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은 매일 아침 챙기는 신문들. 바쁘더라도 주요 헤드라인과 사설 읽기는 빠뜨리지 않는다. 사진 가천대


실제 아침 신문에 ‘전기차 시대에 대학은 내연기관을 가르친다’는 기사가 나온 날, 이 총장은 곧장 관련 학과 회의를 소집해 우리는 뭘 가르치는지, 잘하고 있는지 진단해 보라고 지시했다. 좀 더 깊이 있는 주제일 땐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세미나를 하는 식으로 확대하기도 한다. 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 통합 역시 ‘학령인구’라는 말이 생경했던 20여 년 전부터 학생 수가 줄어들면 대학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를 앞서 고민한 결과였다.


# 이 총장이 새로운 정보를 얻는 인맥은 누구일까. 다양한 네트워크가 있지만 가장 큰 카테고리는 역시 기자와 교수다. “세상 흐름을 가장 빠르게 알고, 전문적 지식을 지닌 이들”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기자를 통해 관심 분야의 전문가를 발굴하고 학교와 병원에 등용한 사례도 적지 않은데 김충식 특임부총장, 오대영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등이 모두 기자 출신이다.


“예전 병원을 확장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나 뭔가 고민거리가 생기면 친분 있는 기자를 찾았어요. 업계지나 전문지 편집국장 같은 분한테 전화해 아침 좀 같이 먹자, 그러고는 서울을 2~3시간 걸려 가서 만났죠. 지금도 주변 직책자들에게 뉴스 많이 보고 언론과 가까이 지내라라는 조언을 많이 합니다.”


# 이 총장을 주말마다 찾는 건 조카 부부인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과 최미리 가천대 수석부총장이다. 두 사람은 병원과 학교라는 가천길재단의 두 가지 큰 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이다. 자연스럽게 가족이면서도 공적인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고, 이 총장의 머릿속을 가장 잘 들여다보는 위치다.


세 사람은 주로 토요일 오후, 이 총장의 인천 자택이나 강원도 평창의 세컨드 하우스에서 모인다. 오후 5시쯤 이른 저녁을 마치고 차 한잔을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어느 정도 대화가 무르익으면 이 총장의 입에서 한마디가 나온다.


 우리 콘퍼런스합시다. 


이른바 위켄드 콘퍼런스는 두 사람이 보직을 맡은 10년 전부터 시작된 일종의 리뷰&프리뷰 자리다. 병원과 학교에 대해 지난 한 주간 중요했던 일, 돌아올 한 주에 닥칠 일들을 하나하나 점검하는데 여기에 미래를 향한 식견이 더해진다. 이 총장은 식사 전 미리 백지에 그 리스트를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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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총장은 최미리 가천대 수석 부총장(왼쪽)과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오른쪽)과 다양한 주제로 '주말 콘퍼런스'를 연다. 사진 가천대


“우리 의견을 듣고 당신 생각을 이야기하며 짚어가는 자리죠. 어릴 적 추운 날 대청마루에서 제사를 지내본 사람은 그런 기억이 있잖아요. 한 장 한 장 지방 태우는 거 보면서 저게 다 언제 없어지나, 하염없이 기다리는 거요. 콘퍼런스할 때 제가 그런 마음이에요. 총장님 리스트가 오늘은 얼마나 되나, 슬쩍 체크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죠. 그런데 막상 하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게 있어서 새롭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요. 지시를 내리기 전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알려주시는 자리라 우리가 많이 배워요.”(이태훈 원장)


이 총장이 주마다 특별한 ‘인생 수업’을 마련하는 셈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내가 키운 자식이 아니니 해 줄 말이 많아요. 그동안 어떻게 했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제가 만날 그래요. 너희들은 125세까지 살 텐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 거냐고요.”


# 이런 ‘콘퍼런스’가 얼마 전까지 집 밖에서도 있었다. 고 이어령 교수, 김병종(가천대 석좌교수) 화백과의 만남이다. 셋의 회동이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었지만 팬데믹 전까지 종종 이뤄졌다. 이 교수는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대표 지식인으로, 김 화백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작가로 이 총장과 오래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다.


이 교수의 경우 1991년 가천문화재단 설립 시 조언해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가천대 교가를 작사하고 학교 대표 교양강좌인 ‘지성학 강의’의 첫 강연자로 참여하면서 이 총장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이 총장 역시 2009년 이 교수가 추진하던 나눔공동체 사업 ‘세 살 마을’에 힘을 보태며 뜻을 함께했다. 서로 우군이 되어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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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부터 서로의 우군이 됐던 고 이어령 장관과 이길여 총장. 부정기적으로 만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0년 세살마을 발대식 당시 모습. 사진 가천대


김 화백과 이 총장의 연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길여 산부인과가 있던 동인천 동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당시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이 ‘이길여처럼 돼라’였다. 병원 창밖에서 ‘늘 바삐 움직이는 의사선생님’을 구경만 하던 소년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서울대 동창회에서 이 총장을 재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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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여 산부인과가 있던 동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김병종 화백은 이 총장과 대학 선후배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가천대


# 언뜻 보면 공통점이 없는 세 사람이지만 김 화백은 “정작 만나면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공통점은 바로 ‘생명’이었다.


이 교수는 생전 ‘생명 자본주의’를 주창해 왔다. 생명에 대한 가치를 인지하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복원함으로써 자연이 경제 활동의 자본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꾸준히 펴 왔다. 김 화백 역시 ‘생명 작가’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생명이라는 주제 아래 연작을 선보였다. 생명의 귀함, 생명으로부터 받는 위로 등을 표현해 당대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 교수가 김 화백을 두고 ‘생명의 동행자’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총장님도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는 데는 저희 두 사람과 다를 바 없죠. 소중한 생명을 받아내는 의사이자 그 생명이 온전히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자라는 점에서요. 셋이 만나면 서로 생명 철학과 비전을 많이 공유했습니다.” 이 교수가 2019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세 사람의 대화는 더 무르익었다. 생명의 탄생만이 아니라 소멸까지 폭넓게 다뤄졌다.


김 화백은 두 사람의 대화가 매우 특별했다고 기억했다. 호기심 많은 두 어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는 화두만으로 두세 시간을 채워 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90%는 달변가인 이 교수님이 말씀하셨지만, 총장님도 경청하시다 단문으로 짧게 의견을 내시고 아이디어를 탁탁 주시곤 했죠. 두 분 모두 서로 존경하는 사이였고, 보기에 참 아름다웠어요. 문학·사학·철학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지식향연, 그 자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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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중앙일보 Leader&Reader '청춘 이길여' 4편 - 92세 이길여, 공 뻥뻥 날린다…‘에이지 슈트’ 비밀 담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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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병원 보직자들과 라운드하는데 거리를 재러 홀 가까이 와 보지도 않고 라이도 잘 안 보고 퍼트를 갖다 대시더라고요.”(김우경 가천대 길병원장)


“같이 쳐 보면 알겠지만 느릿느릿 걷다 툭 치고 가는 어르신들 골프가 아니에요. 공이 뻥뻥 날아갑니다.”(최미리 가천대 수석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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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은 상체 꼬임을 최대한 살리는 '꽈배기 권법'으로 드라이버 장타를 유지한다. 사진 가천대


이길여 총장을 오래 알아온 사람마다 한 번씩 입에 올리는 화제가 있다. 바로 골프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필드에 나가 클럽을 잡을 수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데, 그런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몇몇은 이 총장이 샷을 날리는 휴대폰 영상을 마치 ‘증거물’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목격담이 아니라도 이 총장의 골프 실력은 이미 ‘공증’돼 있다. 78세(2010)에 이어 84세(2016)에도 에이지 슈트(18홀 경기에서 자신이 나이와 같거나 그 이하로 스코어를 내는 것)를 한 것. 골퍼로서는 홀인원이나 이글, 알바트로스보다 더 자랑할 만한 기록인데, 나이가 들어서도 실력과 체력이 모두 받쳐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준급 아마추어 골퍼도 60대 타수가 나오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상 70대에서나 도전해 볼 법하다.


그는 지난해 10월 초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한글날) 연휴 사흘 내내 18홀 라운드에 나섰다”며 “앞으로 에이지슈트할 확률이 더 높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50대부터는 평생 할 운동으로 골프를 배우라”는 조언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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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즐기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클럽을 처음 잡은 건 1970년. 당시 병원 병리과장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막상 실전에 나서기엔 한창 바쁠 때라 틈을 내지 못했다. 87년 중앙길병원을 짓고 나서야 숨 돌릴 여유가 생겼지만, 이때는 또 사회 분위기를 탔다. 노태우 정부 시절 유독 수해가 많아 사회 지도층이 골프를 자제하는 분위기였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아예 ‘공무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진 것. 결국 90년대 후반 60대 중반이 돼서야 이 총장도 본격적으로 잔디를 밟을 수 있었다.


늦깎이 골퍼였지만 실력은 크게 뒤지지 않았다. 86~87년 사이에 다진 기본기가 빛을 발했다.


“당시 인천에는 오전 4시에도 문을 여는 승마장이 있었어요. 새벽에 일어나 그곳에서 한 시간 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골프 연습도 한 시간씩 했죠. 그런데 그때는 지금처럼 자동으로 공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나씩 놔 줬거든요. 그중에 캐디 경력자가 많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코치를 받을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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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유명 선수의 스윙 슬로모션을 보며 이를 따라하기도 했다. 사진 가천대


지금처럼 유튜브나 동영상이 없던 시절이라 아널드 파머나 잭 니클라우스 같은 유명 골프의 스윙 사진을 보면서 자습을 했다. 잡지에 연속 카메라로 찍은 슬로 모션 사진이 나오면 따라 해 보면서 스윙의 정석을 만들어 보려고 한 것이다.


잠이 적은 이 총장에게 새벽은 운동하기 더없이 좋은 시간이 됐다. 여자 의사들과 잡았던 골프 티업 시간이 오전 4시. “예전엔 그 시간이면 예약 없이 현장에 와서도 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너무 깜깜해서 공이 안 보이는 거죠. 그럼 티박스 주변에 둘러앉아 수다 좀 떨다가 공이 보인다 싶으면 그때부터 치기 시작하는 거죠. 한 세 홀쯤 지나야 해가 뜨면서 공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되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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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이 꼽는 골프의 매력은 단연 ‘손맛’이다. 특히 드라이버가 정타를 맞고 시원하게 날아가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다. 실제 그와 라운드해 본 사람들은 모두 이 총장의 티샷을 인정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자타공인 ‘드라이싱’(드라이버로만 보면 싱글감).


이 총장이 인터뷰 중 자랑 삼아 소개한 ‘장타 일화’도 있다. 15년 전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과의 라운드인데, 그와는 90년대 후반까지도 1년에 두 번씩, ‘안양에 벚꽃 필 때, 원주에 단풍 들 때’ 라운드를 가질 정도로 필드 인연이 깊은 사이다.


“안양CC가 원래 남녀 티가 크게 거리 차이가 안 나는데, 세컨드샷을 치러 가 보니 내 공이 더 앞에 나가 있더라고요. 그때까지 윤 회장이 이리저리 코치를 많이 해줬는데 반전이 돼버렸죠. 나중에 캐디한테 물어보니 210야드(192m)쯤 된다고 귀띔해 주더라고요.”




아담한 체격에다 나이가 들어서도 장타가 가능한 비법은 뭘까. 최미리 수석부총장이 여기에 답을 내줬다. 일명 ‘꽈배기 권법’이다. “몸을 최대한으로 꼬았다가 다시 순간적으로 풀어내는 힘을 이용하는 거죠.” 유연성과 근력이 모두 있어야 하는 스윙이라면서, 대화 중간에 휴대폰을 꺼내 이 총장의 드라이버샷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직접 촬영한 모습이었다.


“60대인 저와 남편, 총장님이 같은 티에서 치는데 열 번 중 세 번은 저랑 비슷하거나 저보다 더 많이 나가요. 그걸 보면서 저희끼리 그러죠. ‘우리가 저 나이 때 저렇게 칠 수 있을까’”라고요. 필드 나갈 때마다 이런 화제로 늘 이야기를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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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도 실력이지만 이 총장의 골프 스타일은 그가 일하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송진구 한국리더십대학 원장 겸 가천대 교수(자유전공)는 “과감하게 거침없이 치는 스타일이 평소 의사 결정하는 방식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말한다. 공을 앞에 두고서 할까 말까 재거나 주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윤은기 회장도 여기에 공감했다. 드라이버를 날리고 나서는 기쁘거나 아쉽거나 하는 감정 표현 대신 세컨드샷으로 직진한다는 것. 티샷 이후부터는 스코어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평소 그의 신조 그 자체다.


“예를 들면 거리가 애매할 땐 연못을 넘겨 치느냐, 돌아서 가느냐 망설여지는 경우가 생기잖아요. 대부분 그러면 공을 살리고 싶고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택하죠. 그런데 총장님은 안 그래요. ‘이거 뭐 안 넘어가면 어때, 한번 때려보는 거지’ 이런 식이죠. 원래 스포츠가 수비보다는 공격을 보는 게 더 재미있는 법이라 총장님이 샷 자체를 시원시원하게 때리면 동반인들도 흥미진진한 관전이 됩니다.”


미스샷이 나도 절대 멀리건을 받지 않는다거나, 파3에서 앞 팀이 홀아웃하기 전에는 티를 미리 꽂아두지 않는 것처럼 원칙을 지키는 것도 ‘이길여다운’ 운동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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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전 스트레칭하는 모습. 사진 가천대


골프를 즐기며 운동만 하는 건 아니다. 일명 ‘필드 세미나’다. 잔디를 걸으며 정보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기회로 삼는다. 친분이 딱히 없어도 현 이슈와 관련된 전문가나 교수, 기자 등이 이 총장과의 라운드에 자주 초대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 대화가 필드에서만 끝나지 않을 경우 뒤풀이에서 ‘19홀 세미나’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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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은 자서전 『길을 묻다』에서 78세에 78타를 치면서 “인생의 전환점에 섰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파워와 열정만 있다면 80대 나이엔 80타를, 90대 나이엔 90타를 치면서 ‘에이지 슈터’의 영광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맛본 것. 일밖에 모르고 살던 40여 년의 인생이 헛헛해질 때쯤, 새로운 출발점에 왔다는 깨달음이었다.


 앞으로 에이지 슈트 할 기회는 누구보다 많다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요. 나이 먹으니 좋은 점이 또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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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9

앰뷸런스에 산모 태워 집까지 바래다준 이길여 원장님


앰뷸런스에 산모 태워 집까지 바래다 준 이길여 원장

48년간 간직한 그날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준 이상순 씨 사연

환자 위한 배려와 그 따뜻한 마음 평생 잊을 수 없어

 

“50년이 흘렀지만 그 시절 이길여 원장님이 베풀어 준 배려를 잊은 적이 없어요.”

 

1975년 인천 중구 이길여산부인과에서 셋째를 출산한 이상순(77·경기도 광주)씨는 딸을 안고 홀로 퇴원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11녀에 이어 셋째가 아들이기를 바랐던 가족들은 딸 출산 소식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러운 마음이 복받친 이씨는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출산 바로 다음날 퇴원을 결심했다.

 

그런 그를 다독이며 위로한 것이 이길여 원장이었다. 막무가내로 퇴원하겠다는 그가 혹여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걱정한 이 원장은, ‘돈 안 받을 테니 몸조리 더 하고 사흘 후에 퇴원하라고 몇 번이고 만류했다.

 

그런데도 이씨가 고집을 꺾지 않자 앰뷸런스를 불러 그가 편히 집까지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씨는 병원을 나서는데 이길여 원장님께서 앰뷸런스를 대기시켜놨더라송현동 친정까지 앰뷸런스를 타고 오는 내내 이길여 원장님의 마음씀이 고마워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최근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반가운 영상을 발견했다. 2008년 방송된 ‘KBS아침마당에 출연한 이길여 회장을 보게 된 것. 여전히 곱고, 강단 있는 이 회장의 모습을 보니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잊히지 않던 퇴원 날의 장면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이씨의 사연은 그가 해당 영상에 당시 상황과 감사의 마음을 댓글로 남기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씨는 영상 댓글을 통해 이젠 총장님이신 원장님, 이렇게나마 진심으로 감사인사 드립니다. 존경합니다.(82)”라고 48년간 마음에 품어온 마음을 전했다.

 

이씨는 당시 이길여산부인과는 인천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산부인과로, 1971년에 첫째를 낳으러 갔을 때 처음 본 이길여 원장님은 너무 예쁘고 고우셔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얼굴만큼 마음도 고우셔서 셋째 낳고 받은 배려는 늘 잊지 않고 살았고 바쁘게 사는 중에도 길병원과 가천대가 날로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일처럼 기쁘고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이길여 회장의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를 읽고 힘을 얻고 있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돌지 않는다는 회장님의 강인하고 올곧은 철학이 올해 일흔 일곱, 노년의 나이가 된 그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이씨는 “40대에 사별하고, 아이 셋을 기르느라 정신없이 살면서 어려울수록 강인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인생은 늘 직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살면서 언제나 힘을 주고 위로가 돼 주었던 마음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회장님이 일구신 가천대 길병원, 가천대학교가 더욱 발전해 나가길 바라고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가천 이길여 산부인과 기념관은 사연을 나눈 이상순 여사에게 도서 및 접시세트 등의 기념품을 증정했다. 기념관은 이와 같은 이길여 산부인과와 관련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연은 홈페이지(http://gachon1958.com) 및 전화(032-833-4167~8)로 접수할 수 있다.

 

 

2023-09-04